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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제5편 낙양 불바다와 장안 천도, 동탁의 폭정과 흔들리는 대륙의 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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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한나라 천년 수도 낙양이 불길에 휩싸인 날,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자의 권위를 등에 업은 장군 동탁은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권력의 정점에 오르지만, 그가 세운 질서는 곧 폭정으로 바뀌어 민심을 잃어간다. 수도를 낙양에서 장안으로 옮기며 대륙 전체를 손에 쥐려는 그의 야망은, 오히려 중원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는다. 누가 진정한 패자가 되고, 누가 민심을 얻을 것인가. 낙양의 불길과 함께 불타오르기 시작한 삼국의 운명이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디스크립션

반동탁 연합군에 몰린 동탁은 수도 낙양을 불바다로 만들고 장안으로 천도한다. 그의 폭정은 극에 달하고 한 왕조의 400년 영광은 잿더미로 변한다. 폐허가 된 낙양, 강동의 호랑이 손견은 우연히 천하의 상징인 옥새를 발견하고 새로운 야망의 불씨를 품게 되는데... 대륙의 패권을 향한 영웅들의 분열이 시작된다.

※ 파트 1

반동탁 연합군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으나, 그들의 칼끝은 정작 낙양의 성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원소를 맹주로 추대한 18로 제후들은 각자 다른 셈법으로 군을 움직였다. 동탁이라는 거대한 적 앞에서 뭉쳤지만, 그 속에는 서로를 향한 시기와 견제가 독버섯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선봉에서 연전연승하던 손견의 공을 시기한 원술이 군량미 보급을 끊는 등, 연합군의 내부 균열은 동탁의 폭정만큼이나 심각한 문제였다.

동탁은 호뢰관과 사수관을 틀어막고 연합군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지만, 마음은 타들어 갔다. 천하의 제후들이 모두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이 그를 짐승처럼 날뛰게 했다. 그는 더 이상 낙양의 옥좌에 앉아 천하를 호령하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매일 밤, 연합군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한 환청에 시달렸고, 술과 여자에 빠져 광기를 더해갈 뿐이었다.

어느 날, 동탁은 자신의 심복 이유(李儒)를 불렀다. 이유는 동탁의 가장 교활하고 잔인한 책사였다.

“이유, 저 쥐새끼 같은 놈들이 성 밖에서 맴돌기만 하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구나. 저들을 모두 쓸어버릴 방도가 없겠느냐?”

동탁의 조급한 물음에 이유는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승상, 지금 연합군은 수십만 대군이라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은 하책입니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바로 이 낙양과 폐하를 구출한다는 명분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명분을 아예 없애버리면 어떻겠습니까?”

“명분을 없애? 그게 무슨 소리냐?”

이유는 한 걸음 다가서며 목소리를 낮췄다.
“수도를 옮기는 것입니다. 예부터 ‘왕기(王氣)’가 서려 있다는 장안으로 말입니다. 장안은 함곡관이라는 천혜의 요새에 둘러싸여 있어 수비에 용이합니다. 이곳 낙양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장안으로 옮겨간다면, 연합군은 목표를 잃고 오합지졸처럼 흩어질 것입니다.”

동탁의 눈이 번뜩였다. 장안 천도. 그것은 단순히 수도를 옮기는 것이 아니었다. 한나라 400년의 영광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이 위대한 도시를 버린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동탁에게는 그런 가치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파괴적인 본능을 자극했다.

“좋다! 천도한다! 하지만 우리가 떠난 이 낙양을 저놈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줄 수는 없지.”

동탁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이유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물론입니다, 승상. 우리가 가지지 못할 바에는, 아무도 가지지 못하게 해야지요. 낙양의 모든 궁궐과 민가를 불태워 잿더미로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역대 황제들의 능을 파헤쳐 그 안의 보물들을 군자금으로 삼는다면, 장안에서의 새로운 시작이 더욱 풍요로울 것입니다.”

선황들의 능을 도굴하자는 말에 동탁은 잠시 망설이기는커녕 박장대소했다.
“하하하! 그거야말로 명안이로다! 죽은 황제들이 산 나를 도울 것이니,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이냐!”

그날로 동탁의 광기 어린 천도 계획은 즉시 실행에 옮겨졌다. 그는 헌제(獻帝)를 위협하여 강제로 천도를 명하게 하고, 낙양의 수백만 백성들에게 당장 짐을 싸서 장안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갑작스러운 천도령에 낙양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다.

백성들은 평생을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정처 없는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늙은 부모를 업고,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울부짖는 소리가 낙양 거리를 가득 메웠다. 동탁의 군사들은 이들을 재촉하며 조금이라도 지체하는 자는 가차 없이 칼로 베거나 채찍으로 내리쳤다. 길에는 밟혀 죽은 아이들과 기력이 다해 쓰러진 노인들의 시신이 즐비했다.

이각(李傕)과 곽사(郭汜) 같은 동탁의 장수들은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한 왕조의 수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참상이었다.

백성들을 먼저 장안으로 내몬 동탁은 본격적으로 낙양 파괴에 나섰다. 군사들을 풀어 역대 황제와 후비들의 능을 모조리 파헤치고, 그 안에 있던 값비싼 부장품들을 닥치는 대로 끄집어냈다. 옥과 금으로 만든 옷, 진귀한 보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리고 마침내, 동탁은 낙양의 모든 궁궐과 관청, 민가에 불을 지르라 명했다.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태워버려라!”

동탁의 명령이 떨어지자, 군사들이 일제히 횃불을 던졌다. 건조한 날씨에 불길은 순식간에 도시 전체로 번져나갔다. 400년 역사를 자랑하던 남궁과 북궁의 화려한 전각들이 거대한 불기둥에 휩싸여 무너져 내렸다. 하늘은 시뻘건 불길과 검은 연기로 뒤덮였고, 그 열기는 수십 리 밖에 진을 치고 있던 연합군의 진영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연합군 진영에서 이 끔찍한 광경을 가장 먼저 목격한 것은 조조였다. 그는 치솟는 불길을 보며 몸을 떨었다.
“동탁, 저 역적이! 천하의 심장인 낙양을 불태우고 있다! 저놈은 인간이 아니다, 악마다!”

조조는 당장 맹주인 원소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맹주!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고 필시 장안으로 도주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이 저 역적을 칠 절호의 기회입니다. 즉시 군사를 몰아 추격해야 합니다!”

하지만 원소를 비롯한 대부분의 제후들은 망설였다.
“맹덕(孟德, 조조의 자), 너무 서두르지 마시오. 병사들은 지쳤고, 저것이 동탁의 유인책일 수도 있소.”
“맞소. 섣불리 움직였다가 매복에 걸리면 큰일이오.”

제후들은 동탁을 치는 것보다, 동탁이 버리고 간 낙양 땅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눈앞의 이익과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그들의 모습에 조조는 깊은 절망과 분노를 느꼈다.
“그대들과 큰일을 도모하려 한 내가 어리석었소! 한나라의 충신이라면 어찌 역적의 만행을 보고만 있단 말이오!”

조조는 결국 자신을 따르는 1만여 군사만 이끌고 독자적으로 동탁 추격에 나섰다.

한편,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던 손견은 가장 먼저 군사를 이끌고 불타는 낙양으로 진군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 위풍당당하던 제국의 수도는 이미 거대한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꺼지지 않은 불씨들이 바람에 날리고, 무너진 기왓장과 불탄 기둥들 사이로 매캐한 연기만이 자욱했다. 손견은 군사들에게 명하여 급히 불을 끄게 하고, 파헤쳐진 황릉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제를 올렸다. 그의 충심 어린 모습에 병사들 역시 숙연해졌다.

손견은 임시로 장락궁(長樂宮) 터에 막사를 쳤다. 그날 밤, 한 병사가 궁궐터의 어느 우물 속에서 오색 빛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손견에게 보고했다. 손견은 즉시 사람을 시켜 우물 안을 살피게 했다. 병사들이 우물물을 모두 퍼내자, 그 안에서 목에 옥새를 건 여인의 시체 하나가 떠올랐다.

병사가 시체에서 옥새를 거두어 손견에게 바쳤다. 옥새는 방촌(方寸) 크기로 네모반듯했고, 손잡이는 다섯 마리의 용이 서로 얽혀있는 모양이었다. 푸른빛을 띤 옥은 영롱하기 그지없었고, 한쪽 모서리가 살짝 깨져 금으로 덧씌워져 있었다. 손견이 옥새에 새겨진 글자를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진시황의 명으로 승상 이사(李斯)가 썼다는 여덟 글자, ‘수명어천 기수영창(受命於天 旣壽永昌)’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하늘로부터 명을 받았으니, 그 수명은 영원히 창성하리라.’

이는 천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천하를 가진 자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전국의 옥새(傳國玉璽)였다. 손견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의 곁에 있던 심복 정보(程普)가 황급히 속삭였다.
“주공! 이는 하늘이 주공께 천하를 내리시려는 징조입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다른 제후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니, 즉시 병을 핑계로 이곳을 떠나 강동으로 돌아가 큰일을 도모하셔야 합니다!”

정보의 말에 손견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탁을 토벌하겠다던 충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천하를 향한 거대한 야망이 그의 가슴속에서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동탁의 폭정은 400년 한나라의 수도를 잿더미로 만들었고, 반동탁 연합군은 맹주를 잃은 채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폐허 속에서 발견된 작은 옥새 하나는 대륙의 패권을 향한 영웅들의 분열과 새로운 전쟁의 서막을 알리고 있었다. 대륙의 질서는 완전히 무너졌고, 이제는 힘이 곧 법인 군웅할거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고 있었다.

※ 파트 2

조조가 제후들의 우유부단함에 분통을 터뜨리며 독자적으로 출병할 무렵, 손견은 폐허가 된 낙양에서 남몰래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품속에는 천하의 무게와도 같은 전국의 옥새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정보의 조언에 따라, 손견은 병사들에게 함구령을 내리고 급히 병을 핑계로 철군 준비를 서둘렀다. 동탁 토벌이라는 대의명분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져 있었다. 오직 이 옥새를 가지고 강동으로 돌아가 새로운 왕업의 기틀을 다지려는 야망만이 불타오를 뿐이었다.

그러나 비밀은 오래가지 못했다. 손견의 군사 중 하나가 술김에 옥새에 대한 이야기를 흘렸고, 이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식간에 맹주 원소의 귀에까지 들어가고야 말았다. 원소는 격노했다. 역적 동탁을 치기 위해 모인 연합군 진영에서 역심을 품은 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에 그는 맹주로서의 권위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원소는 즉시 사람을 보내 손견을 자신의 막사로 불렀다. 손견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원소를 찾아갔다. 원소는 차를 권하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문대(文臺, 손견의 자), 그대가 선봉에 서서 큰 공을 세운 것을 천하가 다 아오. 이번에 낙양의 폐허를 수습하며 귀한 보물을 얻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오?”

손견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답했다.
“맹주, 저는 잿더미 속에서 부서진 기왓장과 불탄 서까래 외에는 본 것이 없습니다. 귀한 보물이라니,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원소는 표정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숨길 것 없소. 그대가 황실의 옥새를 우물 속에서 발견했다는 것을 내 이미 알고 있소. 옥새는 나라의 상징이니, 마땅히 맹주인 내가 보관하고 있다가 훗날 황실에 돌려주는 것이 이치에 맞소. 어서 내놓으시오.”

그 말에 손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칼자루를 움켜쥐며 외쳤다.
“맹주께서는 어찌하여 근거 없는 참언을 믿고 저를 이리도 욕보이십니까! 만약 제가 옥새를 사사로이 숨겼다면, 훗날 반드시 칼과 화살 아래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을 것입니다!”

손견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맹세했다. 그의 기세가 너무도 당당하고 흉흉했기에 원소조차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증좌가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그를 추궁할 수도 없었다. 손견은 분을 이기지 못하는 척 자리를 박차고 나와, 그 길로 밤을 틈타 군사를 이끌고 강동을 향해 떠나버렸다. 이로써 연합군의 가장 강력한 창이었던 손견마저 대열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한편, 동탁을 추격하던 조조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그는 하후돈, 하후연, 조인, 조홍 등 일족의 용맹한 장수들과 함께 밤낮을 달려 형양(滎陽) 부근에서 마침내 동탁군의 후미를 따라잡았다. 동탁군은 수백만 백성을 이끌고 가느라 행렬이 길고 속도가 느렸다.

“기회는 지금이다! 전군, 돌격하라!”
조조의 호령에 1만 정예병은 함성을 지르며 동탁군을 덮쳤다. 그러나 이것은 동탁의 교활한 책사 이유가 파놓은 함정이었다. 조조군이 혼란스러운 후미를 공격하는 데 정신이 팔린 사이, 길목에 매복하고 있던 동탁의 맹장 서영(徐榮)이 이끄는 군사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포위망에 갇힌 조조군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화살과 창칼에 병사들이 맥없이 쓰러져 나갔다. 조조는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뚫으려 했으나, 적의 기세는 너무도 거셌다. 혼전 중에 조조는 화살에 맞아 말에서 떨어졌고, 적병 하나가 그를 알아보고 창을 겨누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조조의 곁을 지키던 조홍(曹洪)이 말에서 뛰어내려 적병을 베어버리고 조조를 부축했다.

“주공, 어서 제 말에 오르십시오!”
“자네는 어찌하려고 그러는가!”
조조가 주저하자, 조홍은 울부짖으며 외쳤다.
“천하에 조홍은 없어도 되지만, 주공께서는 없어서는 안 됩니다! 어서 가십시오!”

조홍의 충정에 조조는 눈물을 머금고 말에 올랐다. 조홍은 칼을 빼 들고 걸어서 조조의 앞길을 트며 필사적으로 싸웠다. 하후돈과 하후연 등이 달려와 힘을 합친 덕분에 조조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좁은 길로 달아날 수 있었다.

날이 밝았을 때, 조조의 곁에는 불과 오백여 명의 패잔병만이 남아 있었다. 지난밤의 용맹하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모두가 지치고 부상당한 처참한 모습이었다. 조조는 강가에서 쉬며 멀리 서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동탁이 유유히 사라지고 있을 장안이 있었다. 그는 패배의 쓴잔을 마시며 깊은 탄식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며칠 후, 간신히 목숨을 건진 조조는 제후들이 주둔하고 있던 산조(酸棗)의 연합군 본진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본 것은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는 군대의 모습이 아니었다. 막사 안에서는 제후들이 모여 매일같이 술과 고기를 즐기며 연회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동탁을 토벌할 생각은 까맣게 잊고, 서로의 세력을 과시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조조의 실망감은 분노로 바뀌었다. 그는 연회장으로 뛰어 들어가 술잔을 내던지며 소리쳤다.
“여러분! 우리가 의병을 일으킨 것은 천하의 역적 동탁을 쳐서 한나라 황실을 바로 세우기 위함이 아니었소! 나는 비록 적은 군사로 싸우다 대패했지만, 여러분의 예봉을 꺾어놓았소. 그런데 여러분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오? 싸우지도 않고 매일 술이나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니, 천하의 백성들이 누구를 믿고 의지하겠소!”

조조의 서슬 퍼런 질책에 제후들은 모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누구 하나 선뜻 군사를 움직이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맹주인 원소마저 멋쩍은 표정으로 변명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 순간 조조는 깨달았다. 이들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들에게 대의명분이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깊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대들과는 더 이상 큰일을 도모할 수 없겠소!”

그 말을 끝으로 조조는 남은 군사를 이끌고 연합군 진영을 떠나버렸다. 자신의 고향인 연주(兗州)로 돌아가 스스로 힘을 길러 천하를 도모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조조가 떠나고, 손견마저 강동으로 돌아가자 연합군은 구심점을 완전히 잃었다. 제후들은 더 이상 동탁을 토벌할 명분도, 의지도 없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영지로 돌아갈 궁리를 시작했다. 공손찬은 원소가 맹주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불만을 품고 북쪽으로 향했고, 원소와 원술 형제는 서로의 세력을 시기하며 등을 돌렸다.

결국 천하를 뒤흔들며 결성되었던 반동탁 연합군은 동탁을 무너뜨리기는커녕, 제풀에 지쳐 허무하게 해산되고 말았다. 동탁은 비록 수도를 버리고 쫓기듯 장안으로 갔지만, 결과적으로는 연합군의 위협에서 벗어나 다시금 권력을 공고히 할 시간을 벌었다.

대륙의 패권은 이제 누구의 손에도 있지 않았다. 동탁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어제의 동지들은 각자의 영지에서 힘을 기르며 서로를 겨누는 잠재적인 적이 되었다. 한나라의 권위는 낙양의 잿더미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고, 대륙은 이제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혼돈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낙양을 불태운 거대한 불길은 역적 동탁의 광기였지만, 그 불길 속에서 대륙을 삼킬 새로운 영웅들의 야망 또한 무섭게 타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진짜 실력과 비전, 그리고 무자비함을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 시대였다.

※ 파트 3

반동탁 연합군이 허무하게 해산되고 제후들이 각자의 영지로 돌아가자, 중국 대륙의 질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동탁이라는 공동의 적을 잃은 군웅들은 이제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한나라의 권위는 낙양의 잿더미와 함께 완전히 소멸했고, 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영웅들의 치열한 각축전이 막을 올린 것이다.

장안에 입성한 동탁은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함곡관이라는 천혜의 요새 안에서 그는 한층 더 포악하고 사치스러운 폭군으로 변모해갔다. 그는 장안성에서 이백오십 리 떨어진 미오(郿縣) 땅에 거대한 성을 쌓기 시작했다. ‘만오성(萬鄔城)’이라 불린 이 성은 장안성만큼이나 높고 두껍게 지어졌으며, 그 안에는 낙양에서 약탈한 금은보화와 20년 치의 군량미를 쌓아두었다. 또한, 민가에서 강제로 끌고 온 8백 명의 아름다운 처녀들을 채워놓고 밤낮으로 주지육림의 향연을 벌였다. 동탁은 측근들에게 이렇게 호언장담했다.
“큰일이 잘되면 천하를 호령할 것이고, 혹 일이 잘못되더라도 이 성에 의지하여 여생을 편안히 보내면 그만이다. 천하의 그 누구도 나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폭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조금이라도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자는 조정의 대신이라 할지라도 가차 없이 죽였다. 어느 연회에서는 북쪽에서 항복해온 수백 명의 포로들을 끌고 오게 하여, 산 채로 혀를 자르고 눈을 파내며 팔다리를 끊는 끔찍한 형벌을 내렸다. 연회에 참석한 신하들은 겁에 질려 숟가락조차 들지 못했지만, 동탁은 태연히 술을 마시고 웃으며 그 광경을 즐겼다. 황제는 허수아비로 전락하여 그의 서슬 퍼런 위세 아래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동탁의 만오성은 그의 견고한 요새인 동시에, 한나라 왕조의 무덤이 되고 있었다.

한편, 연합군의 맹주였던 원소는 비록 동탁 토벌에는 실패했지만, 그 명성을 바탕으로 북방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본거지인 발해(渤海)로 돌아가는 대신, 비옥하고 인구가 많은 기주(冀州) 땅을 눈독 들였다. 당시 기주의 주인이었던 한복(韓馥)은 심약하고 우유부단한 인물이었다. 원소는 책사 봉기(逢紀)의 계책에 따라, 북쪽의 강적인 공손찬과 몰래 손을 잡고 기주를 협공하는 척했다.

겁에 질린 한복이 어찌할 바를 모르자, 원소는 순우경(淳于瓊) 등의 인물을 보내 그를 회유했다.
“공손찬의 날랜 군대가 남하하면 기주는 위태로울 것입니다. 원소 공은 명망 높은 영웅이니, 차라리 그에게 기주를 넘겨주어 함께 공손찬을 막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입니다.”

결국 한복은 원소의 압박과 회유에 넘어가 제 손으로 기주를 바쳤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거대한 주(州) 하나를 통째로 손에 넣은 원소는 단숨에 하북의 패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는 전풍(田豊), 저수(沮授)와 같은 명망 높은 선비들을 책사로 영입하고 군비를 확충하며 제국의 초석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이제 더 이상 서쪽의 동탁이 아닌, 한 지붕 아래에 공존할 수 없는 또 다른 북방의 영웅, 공손찬을 향하고 있었다.

강동으로 돌아간 손견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원소는 손견이 맹세를 어기고 옥새를 훔쳐 달아났다고 확신하고, 각지의 제후들에게 격문을 보내 손견을 막으라고 명했다. 특히 원소와 친분이 두터웠던 형주(荊州)의 자사 유표(劉表)에게 밀서를 보내, 손견이 지나가는 길목을 막고 옥새를 빼앗으라고 지시했다.

유표는 한나라 황실의 종친으로 학문을 숭상하는 선비였지만, 난세에 자신의 세력을 지키려는 야심 또한 품고 있었다. 그는 원소의 요청에 따라 장수 괴량(蒯良)과 채모(蔡瑁)에게 군사를 주어 손견의 귀로를 막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형주를 지나던 손견은 유표군의 갑작스러운 습격에 크게 노했다.
“나는 나라를 위해 역적과 싸웠거늘, 같은 한의 신하인 유표가 어찌하여 내 길을 막는단 말인가! 필시 원소의 간계일 것이다!”

‘강동의 호랑이’라는 별명답게 손견의 용맹은 실로 대단했다. 그는 직접 선봉에 서서 유표군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정보, 황개, 한당과 같은 역전의 장수들이 그를 보좌하니, 유표군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결국 손견은 포위망을 뚫고 무사히 강동 땅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지만, 이 일로 유표와는 돌이킬 수 없는 원수가 되었다. 손견은 자신의 본거지인 장사(長沙)에서 군사를 조련하고 힘을 기르며, 언젠가 형주를 공격해 유표에게 당한 치욕을 갚고 옥새의 진정한 주인이 되리라 다짐했다.

이렇듯 거물들이 각자의 영지에서 세력을 다지는 동안, 다른 영웅들 역시 역사의 무대 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연합군에 가장 큰 실망을 느끼고 떠났던 조조는 고향인 연주로 돌아왔다. 그는 이번 실패를 통해 제후들과의 연합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는 더 이상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 대업을 이루기로 결심했다. 그는 ‘뜻을 세웠으나 이루지 못하고 죽은 자들을 위해 제를 올린다(爲亡者祭)’는 글을 지어 패배의 아픔을 되새기는 한편, 널리 인재를 구하고 군사를 모으는 데 전력을 다했다. 특히 당시 골칫거리였던 황건적 잔당 수십만 명을 토벌한 후, 그들을 죽이는 대신 정예병으로 흡수하여 ‘청주병(青州兵)’이라는 강력한 군사적 기반을 마련했다. 순욱(荀彧), 정욱(程昱)과 같은 천하의 기재들이 그의 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비록 연합군 시절에는 작은 세력에 불과했지만, 이제 조조는 난세의 중심을 향해 가장 빠르고 지혜롭게 나아가고 있었다.

유비, 관우, 장비 삼 형제는 여전히 의탁할 곳 없는 신세였다. 연합군이 해산된 후, 그들은 동문수학했던 공손찬에게 잠시 몸을 의탁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었지만, 도원에서의 맹세를 가슴에 품은 채 묵묵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인의(仁義)는 아직 천하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용의 눈은 언젠가 구름을 뚫고 승천할 날을 기다리며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이처럼 한때 동탁을 치기 위해 하나로 뭉쳤던 깃발 아래의 영웅들은 이제 완전히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원소는 하북에서, 조조는 중원에서, 손견은 강동에서, 유표는 형주에서, 그리고 동탁은 관중에서 서로를 노려보며 힘을 길렀다. 대륙은 거대한 장기판이 되었고, 영웅들은 각자의 진영에서 다음 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낙양을 불태운 불길은 꺼졌지만, 그보다 더 크고 무서운 전란의 불길이 대륙 전역에서 타오를 준비를 마친 것이다. 흔들리던 대륙의 패권은 이제 조각나,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 멘트

동탁의 불길은 한나라의 400년 수도를 삼켰지만, 그 잿더미 속에서 새로운 야망들이 거침없이 피어올랐습니다.

역적 토벌을 외치던 대연합은 결국 서로를 향한 시기와 욕망 속에 허무하게 해체되었고, 한때 동지였던 영웅들은 이제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는 라이벌이 되었습니다. 동탁은 만오성에 웅크린 채 폭정을 이어가고, 손견은 품속의 옥새와 함께 강동의 호랑이로 거듭났으며, 원소는 북방의 패자로서 새로운 제국을 꿈꿉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절망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낸 사나이, 조조.
이제 대륙은 분열되었고, 혼돈의 시대는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난세에, 진정으로 백성을 구하고 천하를 품을 영웅은 과연 누구일까요?

다음 시간에는 연합군 결성 이후 다시 만난 두 명의 거물, 조조와 원소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7화. "천하의 영웅은 누구인가?" 조조, 원소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난세를 논하다 편에서, 서로의 속내를 감춘 채 천하의 판도를 논하는 두 영웅의 팽팽한 기싸움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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