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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 제1편: 황건의 난, 흙먼지 속에서 피어난 유비의 의기와 조조의 야망 서곡

    태그 (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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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200자)

    한나라 400년 태평성대가 막을 내리고, 천하를 뒤흔든 대란이 시작됩니다. 황건적 장각의 반란으로 시작된 이 혼란 속에서 후일 천하를 삼분할 세 영웅 조조, 유비, 손권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합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드는 법! 삼국지 대서사의 장엄한 시작을 함께 하세요.

    디스크립션 (300자)

    후한 말기, 황건적의 난으로 시작된 천하대란과 그 속에서 등장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장각이 일으킨 황건적의 반란부터 유비, 관우, 장비의 만남까지, 삼국지의 서막을 여는 감동적인 순간들을 생생한 나레이션으로 만나보세요.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로 찾아뵙겠습니다.

    ※ 파트 1

    때는 바야흐로 후한(後漢) 영제(靈帝)의 치세 말기, 거대한 한 제국은 이미 그 찬란했던 빛을 잃고 깊은 어둠 속으로 서서히 침잠하고 있었다. 수도 낙양의 화려한 궁궐 담장 안에서는 열네 살의 어린 황제가 세상 물정 모른 채 환관들의 손에 휘둘리고 있었고, 그 권세를 등에 업은 십상시(十常侍)라 불리는 간신들은 매관매직을 일삼으며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다. 그들의 탐욕은 끝이 없어서, 황실의 재정은 바닥을 드러냈고, 관리들은 오직 뇌물의 액수로 임명되었다. 이러하니 지방 관리들 또한 백성들을 가렴주구하여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에 급급했고, 충언을 고하는 이들은 간신의 모함에 빠져 하나둘 조정에서 쫓겨나거나 목숨을 잃었다. 나라의 기강은 땅에 떨어졌고, 관리들의 횡포는 날로 극심해져 갔다.

    하늘마저 이 타락한 세상을 외면한 듯, 몇 해째 지독한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온 땅을 할퀴었다. 봄에는 씨앗을 뿌릴 물이 없어 타들어 가는 논밭을 바라보며 한숨지어야 했고, 어렵사리 싹을 틔운 곡식은 여름내 타는 듯한 햇볕 아래 말라비틀어지거나, 혹은 때아닌 홍수에 속절없이 휩쓸려갔다. 가을걷이는 기대할 수조차 없었다. 들판에는 굶주린 백성들의 처절한 신음 소리와 함께, 시신을 쪼아 먹는 까마귀 떼만이 어지러이 날갯짓을 할 뿐이었다.

    굶주림은 역병을 몰고 왔다. 제대로 먹지 못해 면역력이 약해진 사람들은 작은 병에도 쉽게 쓰러졌고, 한번 역병이 돌기 시작하면 한 마을이 통째로 몰살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여보게들! 이대로는 정말이지 산 채로 땅에 묻히는 것과 다를 바 없네! 자식들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운데, 세금은 끝도 없이 오르고 관리라는 작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마지막 남은 것까지 빼앗아 가니!" 한 농부가 갈라진 논바닥에 주저앉아 터질 듯한 울분을 토해냈다. 그의 절규는 메마른 공기 속에 힘없이 흩어졌지만, 듣는 이들의 가슴에는 비수처럼 꽂혔다. "하늘도 이리 무심하실 수가 있나. 몇 년째 제대로 된 비 한 방울 구경 못했네. 그나마 남은 곡식 한 톨마저 저 빌어먹을 탐관오리 놈들 배만 채우고 있으니!" 또 다른 이의 목소리에는 체념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곁에 있던 한 아낙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몸짓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소연했다. "우리 집 양반은 부역에 끌려간 지 몇 달째 소식 한 장 없고, 어린것들은 굶주림에 지쳐 이제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오. 이게 어디 사람이 사는 세상이란 말이오!" 백성들의 원망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그들의 절망은 마침내 거대한 분노의 불길로 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암흑의 시대에, 한 줄기 기이한 빛이 백성들 사이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거록군(鉅鹿郡) 출신의 장각(張角)이라는 자가 스스로를 '대현량사(大賢良師)'라 칭하며, 부적을 태운 물로 병든 자를 고치고, 죄를 뉘우치면 병이 낫는다는 태평도(太平道)의 교리를 퍼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신통력에 대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고, 절망에 빠진 백성들은 그를 살아있는 신선처럼 떠받들었다. 장각은 두 동생 장보(張寶), 장량(張梁)과 함께 각지에 제자들을 보내 교세를 확장했고, 불과 십여 년 만에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는 수십만에 이르렀다. 그는 제자들을 서른여섯 개의 방(方)으로 나누어 조직을 만들고, 각 방마다 거사(渠帥)를 두어 지휘 체계를 갖추었다. 장각은 낡고 병든 한(漢)나라의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며, 백성들이 주인 되는 새로운 황천(黃天)의 세상이 열릴 것이라 외쳤다. "창천이사 황천당립(蒼天已死 黃天當立), 세재갑자 천하대길(歲在甲子 天下大吉)!" 그의 외침은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던 백성들의 마음에 깊숙이 파고들었고, 마침내 그들은 거사를 위한 비밀스러운 준비를 시작했다.

    영제 중평(中平) 원년, 갑자년(甲子年) 봄 3월 5일. 마침내 장각은 때가 왔음을 선언했다. 머리에 누런 수건을 동여맨 수십만의 백성들이 약속이나 한 듯 각지에서 일제히 봉기했다. 이것이 바로 천하를 진동시킨 '황건의 난(黃巾之亂)'의 시작이었다. 황건적의 기세는 실로 맹렬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관아를 습격하여 불태우고, 부패한 관리들을 처단했으며, 부자들의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었다. 굶주림과 핍박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앞다투어 황건적에 가담했고, 그 세력은 삽시간에 청주, 유주, 서주, 형주, 양주, 예주, 연주, 기주 등 여덟 주를 휩쓸며 한나라의 심장부를 향해 진격했다. 조정에서는 황급히 중랑장 노식(盧植), 황보숭(皇甫嵩), 주준(朱儁) 등을 각지에 보내 토벌령을 내렸지만, 이미 부패하고 기강이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진 관군은 황건적의 거대한 물결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낙양의 궁궐은 연일 들려오는 패전 소식에 공포에 휩싸였고, 한나라 사백 년 사직은 그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온 천하는 흙먼지와 피로 뒤덮였고, 백성들의 신음 소리는 하늘을 찔렀다. 이 거대한 혼란과 격동의 시대 속에서, 역사는 새로운 영웅들의 등장을 조용히 예비하고 있었다.

    북방 유주(幽州) 탁군(涿郡) 탁현(涿縣) 땅. 이곳 역시 황건적의 봉기 소문으로 민심이 뒤숭숭했지만, 아직은 비교적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는 키가 일곱 자 다섯 치에 유난히 큰 귀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팔을 가진 한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유비(劉備), 자는 현덕(玄德)이었다. 그는 한나라 경제(景帝)의 아들인 중산정왕 유승(劉勝)의 후예라고 했으나, 그의 대에 이르러서는 이미 가세가 기울어 평범한 백성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며, 돗자리를 짜고 신을 삼아 파는 것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가난했지만, 유비는 말수가 적고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겸손했으며, 기쁨이나 노여움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는 침착하고 대범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황실의 후예라는 자긍심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었으며,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어 천하의 호걸들과 사귀기를 좋아했다. 집 동남쪽 모퉁이에 잎이 무성한 큰 뽕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임금의 수레를 덮는 덮개와 같아, 오가는 이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어린 시절 유비는 동무들과 그 나무 아래서 놀며 "나는 커서 천자가 되어 이런 덮개가 있는 수레를 탈 것이다"라고 말하곤 하여, 숙부 유원기(劉元起)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유원기는 유비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늘 그를 아꼈으며,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왔다. 덕분에 유비는 열다섯 살 때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집을 떠나 당대의 대학자였던 노식(盧植) 문하에 들어가 공손찬(公孫瓚), 유덕연(劉德然) 등과 함께 글을 배울 수 있었다. 스승 노식은 유비를 아껴 "이 아이는 필시 큰 인물이 될 것이다"라고 칭찬하곤 했다.

    학문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유비는 여전히 가난했지만, 그의 명성은 점차 주변으로 퍼져나가 그를 따르는 젊은이들이 생겨났다. 그는 늘 겸손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집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는 그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비는 저잣거리에 나붙은 유주자사 유언(劉焉)의 의병 모집 방(榜)을 보게 되었다. 황건적이 유주 경계까지 쳐들어오자, 유언이 백성들을 모아 이를 막으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방을 한참 동안 읽어 내린 유비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아, 대장부로 태어나 나라에 힘을 보태지 못하니, 이 어찌 부끄럽지 않으리오." 그의 나직한 탄식은 혼잣말이었으나, 바로 등 뒤에서 그 말을 들은 이가 있었다.

    ※ 파트 2

    유비의 나직한 탄식을 들은 이는 바로 장비(張飛), 자는 익덕(翼德)이라 하는 사내였다. 그는 표범 같은 머리에 고리눈을 부릅뜨고, 제비 같은 턱에 호랑이 같은 수염을 가진, 그야말로 만부부당의 용맹을 지닌 듯한 장사였다. 탁현에서 대대로 살아온 그는 집안이 꽤 넉넉하여 푸줏간을 하며 술을 팔았는데, 성품이 불같고 호탕하여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장비는 유비의 한탄을 듣고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대장부가 나라를 위해 힘쓰지 않고 어찌 한숨만 내쉬고 있소?"

    유비가 돌아보니, 목소리만큼이나 기세가 등등한 사내가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유비는 그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차분히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답했다. "저는 한 황실의 후예로, 성은 유, 이름은 비라 하오. 황건적이 난을 일으켜 백성이 도탄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라를 위해 힘을 보태고 싶으나 마음뿐이요 힘이 미치지 못함을 한탄하고 있었소이다." 장비는 유비의 범상치 않은 용모와 침착한 말투, 그리고 그의 말 속에 담긴 우국충정에 마음이 끌렸다. 그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허허, 나는 이 탁현 사람 장비라 하오. 내 비록 가진 것은 많지 않으나, 마을 사람들을 모아 의병에 참여할까 하던 참이었소. 그대 또한 큰 뜻을 품고 있는 듯하니, 우리 집으로 가서 술이나 한잔하며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떻겠소?" 유비는 장비의 시원시원한 성품에 호감을 느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이다. 나 역시 장 장사 같은 분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두 사람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장비의 집으로 향하려 할 때였다. 저만치서 붉은 대추 빛 얼굴에 길고 아름다운 수염을 자랑하며, 봉황의 눈처럼 길게 찢어진 눈매와 누에나방 같은 짙은 눈썹을 가진 한 거한이 육중한 수레를 끌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키는 아홉 자에 가까웠고, 손에는 푸른 용이 새겨진 듯한 기다란 칼자루가 얼핏 보였다.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마치 전장을 누비는 장수와도 같았다. 그가 주루 앞에 수레를 세우고 들어가 앉으며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주인장, 술 한 통 내오시오. 급히 길을 떠나 이곳 의병에 투신하려 하니, 좋은 술로 잠시 시름을 달래고 싶소." 그의 목소리는 굵고 무게가 있었으며, 그 안에 담긴 기백은 예사롭지 않았다. 유비와 장비는 저도 모르게 그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유비가 먼저 다가가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장사께서는 뉘신지 모르오나, 그 풍채가 실로 비범하십니다. 혹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합석하여 술잔이라도 나누시지 않겠습니까? 저희 또한 의병에 참여하고자 뜻을 모으던 중이었습니다." 장비 역시 그의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이다! 이런 난세에 호걸들끼리 만나 술 한잔 나누는 것도 큰 즐거움이 아니겠소! 나는 장비라 하오!" 붉은 얼굴의 사내는 잠시 유비와 장비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수염을 쓰다듬으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에는 칼날 같은 예리함과 함께 따뜻한 온기가 서려 있었다. "나는 하동군 해현 사람으로, 성은 관이요 이름은 우, 자는 운장이라 하오. 본디 고향에서 세력 있는 토호가 백성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의분을 참지 못해 그놈을 죽이고 강호를 떠돈 지 대여섯 해 되었소이다. 이곳에 황건적을 토벌할 의병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는데, 두 분을 뵈니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마음이 동하는구려."

    유비는 관우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뜻을 밝혔다. "저희 또한 황건적을 토벌하여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고자 의병을 일으키려던 참이었습니다. 관 장군과 같은 영웅호걸을 만나게 된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 사람은 마치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사이처럼 금세 의기가 투합하여 장비의 집으로 향했다. 장비의 집 뒤뜰에는 마침 탐스러운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봄기운이 완연했고,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장비가 기꺼이 자신의 재산을 내어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차려내니, 세 사람은 복숭아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술잔을 기울이며 밤늦도록 천하의 일을 논했다. 유비의 따뜻한 인품과 황실을 생각하는 깊은 마음, 그리고 백성을 아끼는 원대한 포부는 관우와 장비의 마음을 움직였다. 관우의 충의롭고 강직한 기개와 깊은 학식은 유비에게 큰 믿음을 주었고, 장비의 용맹무쌍함과 호탕하고 솔직한 성품은 두 사람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야기가 무르익자, 유비가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오늘 현덕은 관 장군, 장 장군과 같은 두 분 영웅을 만나니, 평생의 한을 푼 듯합니다. 지금 천하는 황건적으로 인해 크게 어지럽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 사람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합쳐 이 난세를 바로잡고,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며 아래로는 만백성을 구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관우가 먼저 붉어진 눈시울로 대답했다. "유공의 말씀에 깊이 감복했소이다. 관모, 비록 부족한 몸이나 유공의 뜻을 받들어 생사를 함께 하겠소." 장비 역시 눈을 빛내며 외쳤다. "두 분 형님! 이 아우 장비 또한 두 분과 함께라면 천하의 어떤 역적이라도 두렵지 않소이다! 이왕 이렇게 한마음으로 뜻을 모았으니, 우리 형제의 의를 맺어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유비와 관우는 장비의 말에 크게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세 사람은 장비의 집 뒤뜰 복숭아나무 아래 제단을 마련하고, 검은 소와 흰 말을 잡아 하늘과 땅의 신령께 정성껏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 불타는 향로 앞에서 나란히 무릎을 꿇고, 잔에 피를 나누어 마시며 엄숙히 맹세했다. 유비가 가장 먼저 눈물을 글썽이며 낭랑한 목소리로 하늘에 고했다. "생각건대, 우리 세 사람 유비, 관우, 장비는 비록 성은 다르나 이미 형제의 의를 맺었으니, 마음과 힘을 합하여 어려운 자를 돕고 위태로운 자를 구하며,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케 하리라.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나지는 못했으나, 원컨대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함께 죽기를 바라노라! 황천후토(皇天后土)시여, 굽어살피시어 우리의 이 붉은 마음을 배반하는 자가 있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일지어다!" 그의 맹세가 끝나자, 관우와 장비도 차례로 유비의 말을 따라 굳은 목소리로 맹세를 올렸다. 이것이 바로 천 년의 세월을 넘어 후세에 길이 회자되는 '도원결의(桃園結義)'였다. 복숭아꽃잎이 세 사람의 어깨 위로 하염없이 흩날리는 가운데, 난세를 향한 그들의 뜨거운 의기는 한마음으로 뭉쳐 세상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곧바로 의병을 모으기 시작했고, 장비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내놓았으며, 마침 탁현을 지나던 중산의 큰 상인 장세평(張世平)과 소쌍(蘇雙)이 그들의 의로운 뜻에 감복하여 좋은 말 오십 필과 금은 오백 냥, 그리고 질 좋은 강철 천근을 군자금으로 내놓았다. 이로써 유비 삼형제는 마침내 난세를 헤쳐나갈 첫 번째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이었다.

    한편, 유비 삼형제가 도원에서 결의를 다지며 역사의 무대에 첫발을 내딛고 있을 무렵, 천하의 중심이라 불리던 수도 낙양(洛陽)에서는 또 다른 젊은이가 격동하는 시대의 흐름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조조(曹操), 자는 맹덕(孟德). 그는 환관이었던 조등(曹騰)의 양손자로, 아버지는 태위를 지낸 조숭(曹嵩)이었으나 그 출신 때문에 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조조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임기응변에 능했으며, 권모술수를 부리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방탕하고 예를 따지지 않는 듯 보였으나, 가슴속에는 천하를 호령하고자 하는 거대한 야망을 품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이미 효렴으로 천거되어 낙양 북부위(北部尉)라는 관직을 맡아 오색 방망이를 만들어 법을 어기는 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엄하게 다스림으로써 그 위엄을 떨친 바 있었다. 그 후 돈구현령을 거쳐 의랑(議郞)이 되었으나, 십상시의 전횡과 조정의 부패에 염증을 느껴 병을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가 독서와 사냥으로 소일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건적이 봉기하여 온 천하가 소란하다는 소식이 그의 귀에까지 전해졌을 때, 대부분의 사대부들이 두려움에 떨거나 사태를 관망하기에 급급했던 것과는 달리, 조조의 눈빛은 남다른 기회와 야망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조정의 부패와 무능함, 그리고 황건적의 봉기가 가져올 거대한 혼란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엿보았던 것이다. 그의 입가에는 냉철한 미소가 떠올랐다. "흥, 십상시 저 간신배 놈들… 황제의 눈과 귀를 가리고 사리사욕만 채우니, 어찌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지 않겠는가. 황건적은 비록 오합지졸에 불과하나, 그 수가 많고 기세가 등등하니 결코 얕볼 상대가 아니다. 허나, 이 혼란이야말로 영웅이 뜻을 펼칠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썩은 나무는 먼저 벌레가 먹는 법. 한나라는 이미 속부터 곪아 터지기 직전이다. 이 난세를 평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자, 그가 바로 천하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의 중얼거림에는 서늘한 결단력과 함께 불타는 야망이 담겨 있었다. 그는 혼란 속에서 질서를 보았고, 위기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비범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조조는 황건적의 봉기가 단순한 민란을 넘어, 기존의 낡은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신호탄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바로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즉시 조정에 글을 올려, 자신을 기위(騎都尉)에 임명하여 황건적 토벌에 직접 나서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의 과감한 결단과 시의적절한 행동은, 마침 다급해진 조정으로부터 윤허를 얻어냈다. 조조는 수천의 관군을 이끌고 황건적이 가장 극성을 부리던 영천(潁川)으로 향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천하를 경영할 거대한 청사진이 그려지고 있었다. 탁현의 유비가 의(義)와 인(仁)을 바탕으로 세상을 구하려 했다면, 낙양의 조조는 실리(實利)와 능력(能力)을 바탕으로 난세를 평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하고 있었다. 아직 서로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두 젊은 영웅은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역사의 무대 위로 힘찬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는 이제 막 그 웅장한 소리를 내며 구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 파트 3

    조조가 이끄는 관군은 그 기세부터 달랐다. 그는 낙양을 출발하여 영천에 이르자마자, 황건적의 동태를 면밀히 살피고 군율을 엄정히 세워 흐트러진 군사들의 기강을 다잡았다. 그의 지휘 아래 군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그는 뛰어난 용병술과 지략으로 황건적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황건적은 수적으로는 우세했으나, 대부분 훈련받지 못한 농민들이 주축이었기에 제대로 된 전술이나 통솔 없이 그저 함성만 지르며 달려들 뿐이었다. 조조는 이를 간파하고, 적의 예봉을 피했다가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그는 장사(長社)에서 황보숭(皇甫嵩)과 주준(朱儁)의 군대와 합류하여, 화공(火攻)으로 풀밭에 숨어있던 황건적 대군을 크게 격파하는 데 공을 세웠다. 불길이 하늘을 뒤덮고, 그 속에서 타 죽거나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는 황건적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조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아나는 적들을 추격하여 수만 명의 목을 베고, 수많은 깃발과 군수물자를 노획했다. 그의 용맹과 지략은 조정에까지 알려져,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은 난세를 구원할 새로운 영웅의 한 사람으로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냉철한 판단력과 과감한 결단력은 혼란스러운 전장 속에서 더욱 빛을 발했고,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잠시나마 질서가 회복되는 듯했다. 하지만 조조의 야망은 단순히 황건적을 토벌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 거대한 난을 통해 한나라의 무능함과 부패를 똑똑히 목격했고,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확신을 더욱 굳히고 있었다.

    한편, 탁현에서 도원결의를 맺고 의병을 일으킨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는 장세평과 소쌍에게서 얻은 군마와 자금으로 군장을 갖추고, 오백여 명의 의용군을 이끌고 황건적이 창궐하는 청주(青州) 땅으로 향했다. 그들의 행렬은 비록 수적으로는 미미했으나, 깃발에 쓰인 '한나라 황실 후예 유현덕'이라는 글귀와 함께, 유비의 인자한 풍모, 관우의 위풍당당함, 장비의 맹렬한 기세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남다른 기대를 품게 했다.

    그들이 처음으로 맞닥뜨린 황건적은 청주 자사 공경(龔景)을 에워싸고 맹공을 퍼붓고 있는 수만 명의 대군이었다. 공경은 성안에서 애타게 구원병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주변의 관군들은 황건적의 기세에 눌려 감히 접근조차 못하고 있었다. 유비 삼형제는 이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유비가 공경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들이 구원하러 왔음을 알리자, 공경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성문을 열어 그들을 맞이했다.

    유비는 성벽 위에서 적진을 살폈다. 과연 황건적의 수는 검은 구름처럼 넓은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들의 함성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러나 유비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관우와 장비에게 말했다. "적의 수는 많으나, 대부분 오합지졸이오. 우리가 기습을 가하여 적장의 목을 벤다면, 저들은 저절로 흩어질 것이오." 관우와 장비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형님의 말씀대로 합시다! 제가 선봉에 서서 길을 열겠습니다!" "이 아우도 형님들을 따르겠습니다!"

    다음 날 새벽, 유비는 오백의 군사를 이끌고 성문을 나섰다. 관우는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왼쪽을, 장비는 장팔사모를 고쳐 잡고 오른쪽을 맡았다. 유비는 쌍고검을 양손에 쥐고 중앙에서 군사들을 지휘했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황건적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조롱 섞인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저것들 좀 보소! 쥐꼬리만 한 군사로 우리에게 덤비다니, 제 명을 재촉하는구나!"

    그러나 그것은 황건적들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장비가 먼저 벼락같은 고함을 지르며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이 역적의 무리들아! 연인 장비 익덕이 왔다! 목숨이 아깝거든 썩 물러나거라!" 그의 장팔사모는 마치 살아있는 독사처럼 꿈틀거리며 황건적들의 머리와 팔다리를 후려쳤고,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비명과 함께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관우 역시 붉은 얼굴에 긴 수염을 휘날리며 청룡언월도를 번개처럼 휘둘렀다. 그의 칼날이 번쩍일 때마다 황건적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나갔고, 그 위세는 마치 천군만마를 홀로 상대하는 듯했다. 유비 또한 쌍고검을 자유자재로 놀리며, 용맹하게 싸우면서도 침착하게 전장의 흐름을 읽고 군사들을 독려했다.

    삼형제의 신들린 듯한 용맹 앞에, 수적으로 우세했던 황건적들은 점차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껏 이토록 강력한 무예를 지닌 이들을 본 적이 없었다. "도, 도망쳐라! 저들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다!"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황건적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유비 삼형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아나는 적들을 추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청주의 포위를 풀었다. 공경은 성문을 활짝 열고 나와 유비 삼형제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다. 이 전투를 통해 유비, 관우, 장비의 이름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비록 작은 승리였지만, 그것은 어지러운 난세에 새로운 영웅의 등장을 알리는 분명한 신호탄이었다.

    황건의 난은 유비와 조조를 비롯한 수많은 영웅들의 활약과 관군의 반격으로 점차 그 기세가 꺾여갔다. 교주 장각은 병으로 죽고, 그의 동생 장보와 장량 역시 각지에서 토벌당하면서 황건적의 주력은 사실상 와해되었다. 그러나 이미 한번 터져 나온 백성들의 분노와 조정의 무능함은 한나라의 통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뒤였다. 황건의 난은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혼란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에 불과했다. 이제 천하는 황제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채, 각지에서 군사력을 키운 군웅들이 마치 춘추전국시대처럼 할거하며 패권을 다투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유비와 조조. 아직은 광활한 대륙의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고, 앞으로 어떤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주하게 될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겠지요. 하지만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이미 그들을 향해 맹렬히 굴러오고 있었다. 흙먼지 자욱한 황건의 난 속에서 간신히 싹을 틔운 유비의 의기(義氣)와 조조의 야망(野望). 이 두 개의 거대한 씨앗은 이제 곧 다가올 영웅들의 시대에 어떤 거목으로 자라나 천하를 뒤흔들게 될 것인가. 삼국지라는 장대한 드라마의 막은, 이렇듯 혼란과 격동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오르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여러분, 오늘 삼국지의 첫 번째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400년 한나라 역사를 뒤흔든 황건적의 난과 그 속에서 등장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장각이 일으킨 태평도의 반란은 단순한 민란이 아니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백성들의 간절한 염원이 폭발한 것이었죠. 그리고 이 혼란 속에서 훗날 천하를 삼분할 세 영웅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특히 오늘 마지막에 소개한 유비, 관우, 장비의 만남은 정말 운명적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출신과 성격을 가진 세 사람이 복숭아꽃 아래에서 만나 뜻을 나누는 장면은 삼국지의 백미 중 하나죠.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이 세 영웅이 어떻게 의형제를 맺게 되는지, 그 감동적인 도원결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천지신명을 증인으로 하여 맺은 그들의 맹세는 과연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그리고 이들이 황건적과의 첫 전투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까요?

    삼국지의 대서사가 이제 시작됩니다. 다음 주에도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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